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다우닝 가 10번지 (문단 편집) == 연혁 == 다우닝 가 10번지의 역사는 [[올리버 크롬웰]]파였다가 뒤에 왕정복고파로 돌아선 조지 다우닝(Sir George Downing)이 1682년 이곳에 타운하우스를 지은데서 시작한다. 가정집으로 지은 건물이라 출발부터 [[백악관]]이나 [[청와대]]와는 달랐다. 당장 호칭부터가 사전지식 없이 보면 그냥 주소다. 다우닝 가라는 거리 이름은 다우닝의 이름에서 유래했다. 세인트 제임스 공원과 인접하고 국회의사당까지는 걸어갈 수 있으며 버킹엄 궁전과도 가까운 이곳은 런던의 요지였다. 정작 다우닝 본인은 건물이 완공되기 전인 1675년 사망했기 때문에, 다우닝 가 10번지에 산 적은 없다. 다우닝 가 10번지가 영국 민주주의 역사의 전면에 등장한 것은 다우닝이 숨진 지 50여 년 뒤인 1733년 [[조지 2세]]가 현재는 영국 최초의 총리라고 불리는[* 영국은 관습법의 나라이기 때문에 총리라는 직책이 법으로 뚝딱 만들어진게 아니다.] [[로버트 월폴]]에게 당시 왕실의 소유였던 이 집을 주면서부터다. 월폴은 이 집을 자신의 개인 재산으로 생각하지 않았으며, 월폴 개인이 아닌 당시 공석이었던 제1재무경[* 1100년대부터 등장한 오래된 직위인 Lord High Treasurers(재무경)의 후속 관직으로 국가 재정을 관리하는 최고 관직이다. 영국의 왕실직위로 지금도 현존하는 직위지만 관례적인 직위라고 보면 된다. 그냥 지금은 영국 총리와 동의어로 본다.] 총리가 되면 관저로 줄 것을 요청했고, 조지 2세가 이 요청을 받아들이면서 제1재무경의 관저로 지정되었다. 월폴은 후임자들이 이어받아서 공관으로 사용하기를 희망했지만 월폴 이후 오랫동안 다우닝 가 10번지가 관저로 사용되지 않았다. 원래 지반이 약한 곳에 지었는데다 마루가 휘어지고 벽과 굴뚝에는 금이 가 있을 정도로 건물이 낡아서 살기 불편했기 때문이다. 다우닝 가 10번지가 총리 공관으로 다시 쓰이기 시작한 것은 1902년 [[아서 밸푸어]] 총리부터였다. 또한 1905년 이래로 영국 총리가 제1재무경을 겸하기 시작하면서 재1재무경의 관저인 이 건물이 영국 총리의 관저이자 영국 의회민주주의의 상징 역할을 굳혔다. 하지만 모든 총리가 거주한 것은 아니었다. [[윈스턴 처칠]]은 [[제2차 세계 대전]] 당시 안전 상의 이유 때문에 다른 벙커에서 지내는 경우가 많았으나 이따금씩 다우닝 가 10번지에 자주 나타나서 승리의 브이(V)자를 들어보이며 영국 정부와 내각이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음을 널리 알리고자 하였다. 엄밀히 말하면 다우닝 가 10번지에도 벙커가 있었지만 계속된 폭격으로 다우닝 가 내부가 거의 부서져 안전을 위해 다우닝 가 벙커가 아닌 다른 벙커로 이동했던 것이다. [[토니 블레어]]는 자녀 4명과 함께 지내기엔 공간이 그리 넓지 않았기 때문에 다우닝 가의 다른 집에서 살았고, [[데이비드 캐머런]]은 전통적으로 재무장관 관저로 사용되는 11번지에 살기도 했다. 다우닝 가 10번지의 유명한 대문도 원래는 나무 재질이었으나, [[존 메이저]] 총리 시절인 1991년 아일랜드 공화국군([[IRA]])이 [[박격포]] 공격을 가한 이후 철제 대문으로 바뀌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